올 해는 나에게 있어 약간 알쏭달쏭한 한 해가 될 것 같다. 평소 해외에서 한국이 디지던 말던 신경도 안쓰는 한국 정부임을 잘 알기에, 지난 여름 '선교를 위해' '자발적으로' '정부에서 가기전에 그렇게 가지 말라고 만류하던' 아프가니스탄에 입국한 한국인 21명이 납치될 때 보여준 행태는 가히 나에게 있어 충격과 공포였다.
정부가 가지 말라는데도 들어간 사람들을 위해서 대통령은 시키지도 않은 CNN등의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결연한 구출 의지를 표명하기도 하였다. 아 정말 감동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그뿐만이랴 - 국정원, 외교부, 심지어 국방부까지 나서서 구출을 위해 발벗고 나선 모습에 정말 똥꼬가 아려울만큼 강한 인상을 받았다.
『우리나라의 외교도 좀 발전했구나.. 』
라는 결론이 났었으니까. 그러나 이 생각은 '올해의 제일 바보같은 생각 베스트 상'이라는 상이 있었으면 당당히 대상을 차지할만한 생각이었다. 지금 소말리아 선원 억류사태를 보면 말이지.
방금전 MBC 모 프로그램에서 소말리아 피랍 사태를 보고왔더니 정말 화가 치밀어 견딜수가 없다. 결론은
『니들이 그럼 그렇지』
우리나라 개신교의 파워가 어마어마 하기에, 그리고 정부 부처에 계시는 수 많은 신도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자기 형제 자매가 잡혀있는데 어찌 방관만 하고 있으리오. 아참, 정치인은 표 부터 계산해야지. 이번 구출로 적게잡아 500만표 정도 얻을 수 있는데 이건 완전 대박이 아닐 수 없다. 속으로는 탈레반에게 감사하고 있을지도 모를일이지. 대통령에 각종 정부부처에 언론까지 합세해서 어쨌든지 구하려고 난리 생 쇼를 한것이다.
반면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납치된 선원들은 힘도 없고 백도 없다. 선원들이 힘도 없고 백도 없는 것과 비례하게 정부에서 관심도 없다. 정부 지원 없이 선주인 안현수씨가 혼자서 이리 뛰고 저리 뛰어서 겨우겨우 합의해서 돈을 넘기려고 하니 정부에선 예산이 없단다. 하하하하핫
하는 짓이 옛날 조선시대와 무엇이 다른가?
△ 국민이 위험에 처하면 어디든 달려가신다는 분은 지금 어디에 계시는지?
잊혀질만 하면 신문지상을 장식하는 일제 시대를 칭찬하는 사람들이 일부 나오곤 한다. 이들은 곧 '친일파'라는 딱지가 붙고 여론의 뭇매를 맞지만 정부가 하는 짓 보면 나도 친일파가 되고 싶다. 적어도 외교만은 일제강점기가 훨씬 나았다. 조선인들은 일본인과 해외에서는 동일 취급을 받았기 때문에 해당 국민들은 일본 영사가 무서워서 조선인을 건드리질 않았다. 괜히 건드리면 자기들이 피곤해지기 때문이지.. 일본 영사가 자기 국민 챙기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해외 여행해보면 정말 일본인인척 하려고 일본어도 배우고 있다 -_-
지금 하는 꼬락서니를 보아하니 일제강점기 외교의 발의 때만큼도 못하고 있으니까 동네북이지. 쯧쯧쯧
북문지와 동문지 사이에는 성벽 곳곳이 무너져있었는데, 도리어 성벽이 어떤 방식으로 축조되었는지 더 잘 보여주고 있었다. 한 켜는 가로쌓기, 한 켜는 세로쌓기로 겹겹이 쌓았는데 무너지니 성벽 바깥으로 쌓은 돌이 삐죽삐죽 튀어나온것이 흡사 앙상한 갈비뼈가 삐죽삐죽 튀어나온것 같다.
이 곳을 기점으로 다시 내리막길이 펼쳐졌다. 북문지와 동문지 사이에도 성곽이 군데군데 무너져있었다. 현재 충북 보은군에서 복원공사가 진행중인데, 삼년산성을 이루고 있는 돌이 워낙 많아서 복원작업이 매우 힘들어 보인다. 성곽을 여기저기 돌아다녀봤지만 삼년산성처럼 많은 돌로 이루어진 성곽은 본 적이 없었다.
6월의 태양은 매우 따갑다고 느끼면서 내리막길을 터덜터덜 내려가니 산등성이에서 할머님들이 열심히 작업중이셨다. 캐는지 베는지는 알 수는 없었다. 평일인 월요일에 왠 사람 하나가 정글모자에 카메라메고 접근하니 다들 빤히 쳐다본다. 하긴, 이 시간에 어슬렁거릴 관광객은 없겠지. : ) 왠지 내가 낯선 모양이다. 아까 아저씨를 만나면서도 느낀것이지만 군에서 파견나온 조사원으로 오해하신듯 하다.
허리숙여 인사를 하니 할머님들도 인사를 받아준다. 어색한 침묵이 잠시 흐른뒤 나는 다시 가던 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몇 십걸음 옮기지도 않아 이 곳이 동문지임을 나타내는 표지판이 나를 맞았다.
이 곳은 북문지보다는 산세가 험하지 않지만, 이 곳으로 수레를 옮겼으리라고는 도저히 생각치 못할 만큼 평탄하진 않았다. 성문은 현문식으로 평소에는 사다리나 기타 시설로 출입하다가 비상시에는 모든 시설을 제거하고 수비에 임한 듯하다. 성문이 어른 허리만큼 높기 때문에 올라가려면 사다리 없이는 출입이 힘든 구조로 축조되어 있다.
이 곳에서 약 20분 정도 둘러본 후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역시 회사원인 나에게는 가혹한 시련이다. 동문지를 안내한 표지판도 100%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동문지에서 남문지로 가는 길은 대체로 평지였다. 길을 따라 서있는 성벽은 군데군데 헐려있었고, 새로 복원공사를 한 듯한 성벽이 왠지 주변과 어울리지 않아 매우 어색해 보였다.